"바보" 소리 듣던 '크아·카트라이더' 개발자, 영어 고수된 비결 [긱스]

입력 2023-01-03 13:57   수정 2023-01-04 16:13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직장인에게 영어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프리토킹’을 꿈꾸며 퇴근길 학원에 등록해도 지친 몸을 이끌고 공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업무 중 영어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위축될 때도 많습니다. 영어 잘하는 동료 직원이 부러운 순간입니다. 박종흠 이팝소프트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결국 ‘영어 정복’에 성공하고 본업까지 바꿨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만난 박 대표는 “언어 학습과 게임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게임 개발자'라는 이력을 갖고도 영어 교육 시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회의 때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들었죠. 전화 영어부터 인터넷 강의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창업자로서 박 대표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대구과학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수상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때 은상, 2학년 때는 대상을 탔습니다. “세계 대회에는 못 나갔다”며 부끄러워하는 그의 또 다른 면모는 유명 게임 개발자입니다. 넥슨의 대표작인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카트라이더’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공부든 일이든, 누구도 “못한다”고 지적 않던 삶이었습니다.

잘 나가던 박종흠 이팝소프트 대표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영어’였습니다. 넥슨 퇴사 후 만든 회사가 외국에 인수되고부터 많은 영어 회의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박 대표는 “영어 정복에 걸린 시간이 꼬박 2년”이라며 “문법 지식으로 말을 설계하면 늦고, 이해 가능한 단어와 문장을 머리에 최대한 쌓아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대표가 영어교육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가게 된 이유에는 이때 몰입했던 학습 경험이 있습니다.
'김정주 형' 옆에서 게임 개발자로 살다
이전까진 게임 개발 ‘외길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대학 1학년 시절, 넥슨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과학고 출신으로 개발 언어를 꿰고 있던 그에게, 학교 수업은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기숙사 친구의 ‘아는 형’, 당시 넥슨에서 일하고 있던 나성균 네오위즈 창립자의 소개로 업계에 첫발을 디딘 것이 1996년입니다. 첫해에 한 일은 현대자동차 사이트 개발 외주 업무였습니다. 당시 10명 남짓의 넥슨은 그렇게 돈을 모아 롤플레잉게임(RPG) ‘바람의나라’ 제작에 한창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넥슨의 초기 모습을 함께했던 셈입니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모두 그의 ‘넥슨 형들’이자 동료였습니다.

게임 개발하는 재미에, 집에도 안 가고 회사에서 먹고 잤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는 쾌감”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개발한 게임은 연이어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물풍선을 터트리며 경쟁하는 전략 비디오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현재의 넥슨을 만든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팀장 시절 5명 남짓 인원과 만든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성공하고는, 실장으로 승진해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를 또 한 번 성공시켰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26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관리직군에 오르다 보니, 개발에 대한 갈망이 계속 남았습니다. “‘정주 형’도 20대에 창업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것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넥슨을 박차고 나와 2004년 게임사 ‘J2M소프트’를 차렸습니다. 8년간 저축했던 돈으로 회사를 차리고 개발한 게임은 역시 레이싱 게임이었습니다. 서울시 배경의 맵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레이시티’가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접속자 수 측면에서 넥슨 게임만큼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대량의 맵 데이터를 경량화해서 처리하는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회사는 2008년 글로벌 게임회사인 일렉트로닉아츠(EA)에 인수됐습니다.


당시 EA는 네오위즈와 협력해 한국에서 ‘피파온라인’을 서비스하고 있었습니다. 개발 실무를 네오위즈에서 주도하다 보니, EA 코리아의 의사 결정력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실력 있는 개발 스튜디오를 인수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J2M소프트가 눈에 든 것이었습니다. 개발실장 직무를 맡으며 다시 직장생활에 뛰어들었습니다.
출퇴근 90분, 원서 단어가 만든 영어 실력
외국계 회사 근무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회의 방식이 달랐습니다. 컨퍼런스 콜이 열리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본사 임원들과 전 세계 지사장들이 영어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박 대표 인생에 ‘영어’라는 키워드가 새삼 등장하게 된 계기입니다. 당시 영어 실력에 대해 그는 “읽기랑 쓰기는 80~90점을 줄만 했는데, 말하기가 50점 수준이었다”며 “회의 때 말 자체를 꺼리게 됐다”고 회상했습니다.

한수정 당시 EA코리아 사장이 꺼낸 말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말도 ‘바보 같이’ 하는 대표의 회사를 왜 인수했냐”는 회의 참석자 말을 지사장에게 전해 듣는 순간, 그는 ‘내가 무언가 못한다는 소리를 듣다니’라 생각하며 색다른 감정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때마침 맡은 프로젝트에서 영어 회화가 필요해지기도 했습니다. EA 재직 시절 그의 성과로 남은 피파온라인3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캐나다의 게임 스튜디오와 실시간 회의가 늘었던 것입니다.

직장인의 영어 정복 일대기가 시작됐습니다. “2년간 그룹 회화?화상 영어?전화영어 등 각종 교육을 안 해본 것이 없다”고 그는 회상했습니다. 유명 강사의 온라인 강의도 들어보고, 소위 ‘깜빡이’라 부르는 영어 학습기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세계적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의 언어 학습 방법론을 접했습니다. “정답은 이해 가능한 ‘인풋’을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문법에 의한 절차적 지식으로 문장을 만드는 것은 실제 대화에선 너무 느렸어요. 머릿속에 단어와 문장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결국 말로 튀어나오는 구조였습니다.”

학습 방법을 바꿨습니다.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살던 그는 회사가 있던 삼성역까지 25분 남짓을 원서를 읽는 데 썼습니다. 퇴근하고도 문법 구조를 신경 쓰지 않고, 문장과 단어를 암기하는데 1시간씩 투자했습니다. 고전 소설 ‘파리대왕’부터 ‘해리포터’까지 다양한 책을 소리 내 읽고 외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활용은 자제했습니다. 반복 학습이 어려워서입니다. 2년 뒤엔 질의응답이 포함된 영어 회의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습니다. 함께 이팝소프트를 창업한 최영민 대표는 넥슨 때부터 함께한 개발 동료로, EA에서도 함께 재직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회의 끝나고 나오는데, 최 대표가 그러더라고요. 누굴 잘 칭찬을 하는 성격이 아닌데, 진짜 놀라서 ‘영어를 왜 이렇게 잘하냐’고 하더라고요. 뒷골이 찌릿찌릿, 너무 좋아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어는 게임…'튜토리얼' 없어야 영어 배운다"
몰입했던 영어 공부는 인생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자신감을 포함해,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의 서재엔 일본어?러시아어?프랑스어?페르시아어 등 13개 언어에 관한 책이 가득합니다. 박 대표는 “언어 학습은 게임과 같다”“특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시험을 이겨내고 결국 보상을 얻어내는 기본 구조가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EA에서 ‘피파 온라인3’를 성공시킨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나 영어단어 앱 ‘말해보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게임 제작사를 창업하기도 했지만, 모바일 게임 시대에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렸습니다.
말해보카는 마치 게임처럼 영어 단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문장에 뚫린 단어 빈칸은 이용자 스스로가 채워나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금 영어교육은,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만 끝없이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틀려가면서 배우는 게 핵심입니다.” 앱에 접속하면, 학교 내신이나 취업, 회사 업무상 필요 등 학습 목적을 입력하게 됩니다. 이후 형태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I __ Alex’라는 문장이 있으면, 빈칸에 ‘am’을 기입하는 방식입니다. 별다른 힌트 없습니다. 난도는 레벨별로 구성되며, 복습 일자는 앱이 스스로 알려줍니다. 틀려가면서 배우는 형태는 게임에서 캐릭터가 체력을 잃으며 ‘스킬’을 배우는 구조와 같습니다.

앱 내엔 다양한 캐릭터가 있습니다. 물고기, 고양이 등 동물 모양이 기반인데, 학습을 통해 벌어들인 게임머니로 치장할 수도 있습니다. 앱을 많이 사용할수록 스스로의 순위를 올리는 기능도 있습니다. 마치 모바일 캐주얼 게임과 같은 구조의 말해보카는 최근 앱 다운로드 270만 회를 넘겼습니다. 출시 3년만 성과입니다.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 규모는 약 22만 명입니다.

“토익 등 시험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질문에 박 대표는 “영어의 본질을 쌓을 수 있는 영양제 같은 교육을 추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앱의 목적은 바탕을 쌓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신규 서비스 ‘말해보카 영어사전’을 내놓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약 280만 개 영어단어 데이터를 모아, 검색하면 원어민이 사용하는 뜻 순서대로 결과를 출력하는 앱입니다. AI 문장 분석도 가능합니다. 그는 “트위터 볼 시간에, 유튜브 볼 시간에 저희 앱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부여하려 한다”며 “올해 일본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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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 가지 더

교육 앱 '투자 전성시대'

교육 앱에 대한 벤처캐피털(VC) 투자가 꾸준히 몰리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몸집도 덩달아 커지는 추세입니다.

2018년 설립된 이팝소프트는 지난해 6월 1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에이티넘인베트스먼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가 투자했습니다. 누적 투자금액은 총 115억원입니다. 성인 교육 콘텐츠 플랫폼인 클래스101?데이원컴퍼니는 지난해 9월과 지난 4월과 각각 300억원과 350억원의 '뭉칫돈'을 받았습니다.

'콴다' 운영사 매스프레소는 투자 혹한기를 뚫고 이달 시리즈C 투자유치를 마무리했습니다. 규모는 770억원입니다. 콴다는 수학 문제 사진을 찍으면 풀이를 알려주는 앱입니다. 신세계그룹 벤처캐피탈 시그나이트파트너스?YBM?굿워터 캐피탈?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투자사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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